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(문단 편집) == 연혁 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www.dgfl001.idg.or.kr/SSM10068.jpg|width=600]]}}} || 1976년 창단된 팀으로 알려져 있으나 1960년부터 1964년 초 사이에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야구부를 운영했었다. 이 당시엔 가장 많을 때도 팀원이 고작 15명 정도였던 작은 팀이었다. 1976년 창단 기사를 보면 재출범이라고 나와있다. 당시 감독은 훗날 [[삼성 라이온즈]]의 초대 감독이 되는 [[서영무]][* 하지만 이름을 날리게 된 건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]]의 감독을 맡아 전성기를 이끌던 시절. 대구고 감독 시절은 기록되어 있지 않은 걸 보면 어지간히 흑역사였던 듯. 사진에는 함께 찍혀있다.], 이후 축구 국가 대표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[[김재한]]이 당시 야구부 소속이었다. 김재한은 야구부가 해체되면서 성광고로 전학가서 축구로 전향하게 된다. 대구지역 야구 명문고는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|경북고]]와 [[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|상원고]](대구상고)로 양대 산맥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으며 이들 양대 산맥 그늘아래 [[성광고]], [[영남고]], [[대건고]]는 조기 해체되기도 했다. 그러나 대구고는 잘 버티면서 대구지역 야구 명문고로서 이름을 알리고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. 창단 당시 수급한 우수한 인재들이 졸업반이 되던 1979년에 황금사자기와 봉황대기에서 4강에 오르면서 이름을 알린 대구고는 1981년에는 야구 천재 [[강기웅]]의 활약 속에 다시 대통령배 4강에 오르면서 이름을 알렸다. 그리고 강기웅이 졸업한 후에도 1983년 황금사자기 준우승을 거두며 대구 지역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자신들이 부상했음을 알렸다. 그렇지만 그 뒤로 2000년대 들어서기까지 우수한 투수들, [[김상엽]], [[김진웅]], [[윤길현]] 같은 재목들은 나왔지만 이들은 [[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|대붕기]] 우승은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전국무대 우승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. 그러나 이후 2020년, 황금사자기 결승에 진출하는 데 성공하면서 우승에 도전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